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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살이 3년 반] 이제는 떠나고 싶은 이유 - 영주권까지 생각했지만..
    태국살이 3년반 2021. 1. 17. 23:50

     

    회사 오피스가 있던 Wireless 로

     

    나는 링크드인에서 태국 방콕 리로케이션을 지원해주는 공고를 보고 덜컥 입사지원을 했고 영어 인터뷰와 온라인 테스트를 거쳐서 방콕으로 오게 되었다. 이전에 받던 급여의 3분의 1도 안되었지만 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급여였다. 50년 뒤의 내가 태국에서 취업해서 살아본 경험을 후회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물 아홉살의 특이한 선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태국 방콕으로 떠났다.
     

     

    태국 도착 후 6개월


     

    태국은 여행 한 번 와본 적 없었지만 워낙 인기있는 여행지라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지원해주는 항공편과 호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입사동기들과 여기저기 여행도 하고 함께 트레이닝도 받으면서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막상 정신없이 회사에 적응하느라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 했었지만.

     

    정확하게 하루 8시간 만 근무하고 퇴근했고 야근이나 회식 등 요상한 한국식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저녁있는 삶이 보장되었다. 그럼에도 무더운 출근, 너무 추운 에어컨, 방대한 업무 트레이닝 등으로 체력 정신력 소모가 어마어마해서 집에 오면 바로 뻗었다. 태국마사지에 빠져서 퇴근하고 타이 마사지를 받고 노곤노곤해져서 잠이 들곤했다. 어떤 날은 매일 마사지 샵에 갔더니 사장님이 너무 자주 받으면 오히려 몸에 안 좋다고 조언해주셨다.(일주일에 한 번 정도!)

     

     

    1년-2년

     

    슬슬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 거의 한 두 달에 한 번 씩은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특히 치앙마이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알렉스는 완벽한 태국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방콕과 치앙마이를 매달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깊이 사귀게 되었다. 회사 친구들과도 여기저기를 놀러다니며 일과 삶, 여가의 균형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태국 생활 플렉스$$

     

    급여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방콕에서 수영장과 헬스장이 갖추어진 원베드룸을 한화로 40만원 정도에 렌트할 수 있었다. 태국식으로 간단히 요기하면 한 끼에 3000원 정도, 일식 서양식 또는 한식으로 외식하면 만원 정도. 배달 문화도 한국보다 잘 되어있고 한국식당, 한국마트가 곳곳마다 있어 음식으로 힘들 일은 없었다. 친구들과 분위기 좋은 루프탑이나 호텔 바에서 시간을 보내도 하루에 3-5만원이면 충분했다. 

     

    최근 오픈한 대형 쇼핑몰 아이콘 시암에서 내려다본 짜오프라야 강
    아이콘 시암 쇼핑몰

     

    세계적인 휴양지인 푸켓, 끄라비 등으로 놀러가는 왕복 항공편도 3만원 대에 특가로 구입하기도 했고 비싸도 10만원이 안됐다. 하루 5만원에 충분히 깨끗하고 좋은 리조트에 묵을 수 있었고 10만원이면 5성급에서 호캉스할 수 있었다. 평소에 받는 동네 타이마사지는 200바트, 그러니까 1시간 전신 마사지가 8천원이 안되었다.

    (동료들끼리 농담으로 태국에서 휴양지 여행 갈 때마다 100만원 씩, 마사지 받을 때마다 5만원 씩 할인 받는 거라고들 했다. 낮은 월급을 보상하는 태국 복지..?)

    관광대국인 만큼 관광업에 종사하는 태국 사람들은 대부분 기초영어가 통했고 친절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의료보험 한도가 높아서 범룽랏, 사미티벳 등 5성급 호텔 같은 분위기의 인터네셔널 병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이처럼 태국에서 관광객처럼 사는 것은 편리하고 좋았다. 이렇게 편하게 먹고싶은거 다 먹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데도 급여의 40%는 꾸준히 저축할 수 있었다. 

     

    방콕 짜오프라야 강에서 보트를 타면 볼 수 있는 왓아룬의 모습

     


    태국은 사람이며 동물이며 심지어 식물까지도 뜨끈한 태양 아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심이 깊은 나라여서 동물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데, 아무도 길가의 개나 고양이를 발로 차거나 괴롭히지 않아서 길 한복판에 개가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길고양이도 사람들이 먹이를 잘 주니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한테 애교를 부리면서 먹을 것을 요구한다. 강렬한 햇빛을 받고 식물들은 어디서나 무럭무럭 자라고 싱그러운 초록빛을 뽐내며 곧잘 꽃을 피운다. 편안한 표정의 동물, 꽃까지 피워낸 식물을 보는건 언제나 기분 좋다.

     


    2년-3년

     


    태국 생활에서 행복과 평온함을 누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갈등하지 않을까 싶다. 관광객처럼 1-2년 정도 사는 것은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생활이 영원할 수는 없다.


    태국은 이민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기 매우 어렵고 정해진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알렉스가 6년을 태국에서 살면서 본 수 많은 러시아 사람 중 한 명 정도만이 영주권을 받았는데 그 사람은 태국사람과 결혼했고 주 태국 러시아 대사관에서 태국 사람들과 긴밀하게 일하며 10년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언제까지나 외국인이라는 것

     

    태국 사람과 예쁘게 연애하다가 결혼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태국의 경우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태국사람과 경제적, 법적인 권리가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일방적으로 이혼 당해 평생 태국에서 일군 자산을 모두 잃고 파타야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는 등의 무시무시한 소문을 종종 접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외국인은 땅이나 하우스를 구입하거나 사업의 소유주로 독자적으로 등록할 수가 없기 때문에 태국인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알렉스와 나는 태국 사람이 아니고 태국 사람들과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태국에서 영주권 등을 취득하여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안정적인 직장에서 취업비자를 가지고 있고 태국은 취업비자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태국 내 비자 지원되는 회사를 계속 다니며 살 수도 있다. 그렇게 태국에서 10년 이상 장기 거주해오며 콘도까지 구입하고 정착하다시피 사는 외국인 동료들도 꽤 있고.(콘도는 외국인도 구입 및 소유 할 수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장기간 태국에서 살아오면서 비자 정책이 가면 갈수록 까다로워 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해왔다. 서류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입국 심사 담당자가 트집을 잡아 유치장에 가두고 추방당한 적도 있었다. 

     

    태국에  살지만 태국어는 못해요 - 노력은 해보았다는 (구차한?)변명

     


    나는 인문대학에서 다양한 언어를 공부해왔고 태국에 살면서 태국어를 배우는게 어렵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태국 가기 전부터 태국어 책을 사서 연습했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태국어 클래스를 3개월간 열심히 다녔다. 나중에는 거금 백만원을 들여서 1년 치 태국어 학원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의 태국어 실력은 노력이 무색하게 언제나 제로로 수렴한다. 

    아무리 외우려고해도 헷갈리는 태국알파벳.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하나의 소리에 여러 문자가 대응되어서 굉장히 헷갈린다. 태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도 읽고 쓰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



    태국어 학원을 하루에 4시간 이상, 6개월 이상 다니고 태국 사람들을 관리하는 직종이나 통번역 쪽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태국어를 잘한다. 태국 대학을 졸업하고 태국에 살면서 태국사람과 사귀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태국어를 잘한다. 하지만 나도 알렉스도 각자의 모국어가 있고 업무는 영어로 한다. 아무리 영어로 오랫동안 일을 해도 논네이티브이기 때문에 영어를 더 공부해야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크다. 태국어는 교양과 취미의 영역이고 영어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직장에는 해외유학하고 돌아와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태국인들 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고 회사를 마치고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는 연인이다. 

     



    심지어 우리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레스토랑, 마사지샵, 쇼핑몰 등에서 생활하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기초적인 영어를 해서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넘어서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을 하기는 어렵다. 영어로 번역된 정보와 서비스는 극히 제한적이다. 언제까지나 외국인 대상 영어 서비스에 의존해 살 수는 없다. 취업에도 한계가 있다. 극히 제한적인 영어 환경의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다. 

     


    빈부격차, 열악한 도시 인프라, 외국인 차등 요금, 제한된 표현의 자유 

     


    태국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이고 축복받은 땅이기에 언제나 먹을 것이 풍족한 나라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고 열심히 소비한다. 방콕의 높은 빌딩들, 화려한 호텔과 쇼핑몰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그러나 오래 지내다보면 얼마나 교육 격차가 크고 빈부격차가 극심한지 보인다.


    번쩍번쩍한 호텔과 쇼핑몰 빌딩이 늘어서 있는 중심가에 갓난 아기를 땅에 앉히고 구걸을 한다. 도시 중심가에서 80대의 노인이 10대의 헐벗은 소녀를 자랑스럽게 끼고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역겹다. 사람들이 걷지 않기 때문에 도보가 거의 없다. 있어도 관리가 되지 않아 다 망가져있어서 편평하고 깨끗하게 관리된 보도블럭을 찾기 매우 어렵다. 교통정체가 극심한 나라 중에 하나인데 해결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왕족과 불교를 모독하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소셜미디어든, 오프라인이든 말을 굉장히 조심해야한다. 최근에는 호텔 서비스에 대해 악평을 했다가 감옥에 갇힌 외국인의 사례도 있었다. 온라인 리뷰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오전 8시, 오후 6시에는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국왕에 대한 찬미를 해야하고 영화 관람 전 일어나서 국왕찬미 영상을 보며 존경을 표해야한다. 이런 것들이 관광을 하면 잘 보이지 않을텐데, 오랫동안 살아도 도저히 적응이 어렵다.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온화하며 특히 방콕이 아닌 지방에 가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방콕에서는 일상에서 자잘한 스캠을 경험할 수 있다. 무례하게 말도 안되는 요금을 청구하는 택시기사, 음식 주문을 언제나 잊어버리고 엉뚱하게 청구하는 식당 종업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콘도 계약 사기 등. 관광지 어디든 외국인에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이상의 입장료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이에 항의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따로 생겼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기본 관광요금을 300바트 씩 징수한다고하니 이러한 노력은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외국인 중에는 부유한 유럽 은퇴자, 휴양을 즐기러온 중국 부유층도 있겠지만 태국 평균 급여에 못 미치는 돈을 벌러온 돈 벌러온 사람들도 있고 태국 시민은 아니지만 태국인과 결혼해서 태국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듀얼 프라이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페이스북페이지 2PriceThailand에서 발췌. 태국에서는 자주 이러한 외국인 요금을 볼 수 있다. 



    정부에서부터 외국인을 차별하며 많게는 10배의 돈을 내라고 하니 관광업 종사자나 외국인 상대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외국인에게 같은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하게 되고 오래 살면 살 수록 장기체류자들은 억울한 마음이 커져갈 수 밖에.  하지만 태국은 이러한 사람들을 포용해주지 못하는 만큼 태국 정착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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